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네소타 바이킹스 (문단 편집) === 창단 ~ 2008년 === 1959년 들어 향토사업가 빌 보이어(1906~1973)와 H.P. 스콕룬드(1903~1977), 전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단장 맥스 윈터(1903~1996) 등이 팀 창단을 위해 준비과정을 거치고, 1961년에 리그 14호 팀으로 정식 창단했다. 초대 구단주 겸 사장은 빌 보이어, 단장은 버트 로즈, 감독은 전 LA 램스 주전 쿼터백 놈 밴 브록클린이었다. 창단 이후 조지아대 출신 쿼터백 [[프랜 타킨턴]]을 중심으로 팀을 꾸렸으나, 1960년대 중반까지 잦은 선수진 및 코치진 교체로 팀 컬러를 확립하지 못해 하위권을 맴돌았다. 1964년에는 CFL 팀 캘거리 스탬피더스 단장이던 짐 핑크스(1927~1994)[*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태생. 털사 대학교 출신으로 1949 NFL 드래프트 때 12라운드 116픽으로 피츠버그 스틸러스에 뽑혀 6년간 뛰며 1952 시즌에는 올스타로 뽑혔고, 1955 시즌을 끝으로 잠정 은퇴 후 노터데임 대학교 미식축구부에서 코치로 일했다. 1957년에는 CFL 팀 '캘거리 스탬피더스'에서 잠깐 플레잉코치로 뛰었고, 동년 10월부터 스탬피더스에서 단장 일을 시작하여 미네소타 바이킹스, 시카고 베어스, 뉴올리언스 세인츠 등지에서 단장 자리를 두루 거치다가 1994년 5월 8일에 폐암으로 숨졌다. 1995년 프로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에 경영자 자격으로 헌액되었다.]가 단장으로 왔고, 1967년에 동 리그 팀 위니펙 블루바머스의 감독이던 버드 그랜트(1927~2023)를 영전해 타킨턴을 뉴욕 자이언츠에 팔고 DE 칼 엘러 및 짐 마셜, DT 게리 라슨 및 [[앨런 페이지]][* 은퇴 후 미네소타 주 대법원 판사를 지냈다.]를 주축으로 한 '퍼플 피플 이터스(Purple People Eaters)'란 막강 수비진 4인방을 구축해 1969년에 사상 첫 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나, 슈퍼볼에선 AFL 우승팀 [[캔자스시티 치프스]]에게 패했다. 1971년 뉴올리언스 세인츠로부터 DT 덕 서덜랜드를 사고 1972년 타킨턴이 복귀한 후 공격에서도 두각을 드러내 1974, 1975, 1977년에 각각 세 번 슈퍼볼에 진출했으나, 트로피를 쟁취하지 못했다. 특히 1975-76시즌에 댈러스 카우보이스와 붙었던 디비저널 플레이오프에선 로저 스타우벅이 선보인 '헤일 메리 패스'의 희생양이 됐다. 1970년대 후반에 영광의 멤버들이 떠나고 1980년대 초반 들어 포스트시즌을 못 갔지만, 리치 개넌, 웨이드 윌슨, 스티브 조던, 앤써니 카터 등을 영입해 리빌딩을 했다. 1985년에 그랜트 감독이 돌아왔으나, 이듬해에 제리 번스 OC가 감독직을 물려받은 후 다시 플레이오프 단골 팀으로 승격해 1987년 NFC 컨퍼런스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워싱턴 레드스킨스]]에게 10-17로 패했다. 그 사이 맥스 윈터 구단주는 1985년에 어빙 L. 제이콥스와 칼 폴라드[* 당시 MLB 팀 미네소타 트윈스 구단주.]에게 일부 지분을 넘겼고, 1989년에는 대주주 자리까지 넘겼다. 같은 해 팀은 댈러스 카우보이스 RB [[허셜 워커]]를 사려고 에밋 스미스 등 1990~1993년 드래프트 지명권 8개를 팔아넘겼다. 공들여 사온 허셜은 팀에서 3년 뛰는 동안 1시즌당 러싱야드 세 자릿수밖에 기록하지 못해 팬들에게 '먹튀'로 낙인찍혔고, 1991년 제프 다이아몬드 단장, 1992년 데니스 그린 감독이 각각 취임한 뒤에도 WR 크리스 카터 등이 활약하며 플레이오프는 5번이나 갔으나, 프런트와 코치진이 많이 바뀌면서 혼란에 빠졌다. 1998년 전 샌안토니오 스퍼스 구단주 레드 맥컴스가 팀을 인수한 후 은퇴 상태였던 전 필라델피아 이글스 QB 랜달 커닝엄을 삼고초려 끝에 영입하고, 동년 드래프트에서 마셜대 출신 WR 랜디 모스를 21픽으로 뽑았다. 커닝엄-카터-모스를 주축으로 한 팀은 정규시즌에서 30개 팀 가운데 15승 1패를 기록하기도 했고, 1999년 시즌까지 323승 250패 9무, 승률 0.564로 상위권인 역대 7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뭔가에 씌었는지 NFC의 콩라인 신세를 영 면치 못했다. 컨퍼런스 챔피언십 게임에만 진출하면 승리를 예상하든 패배를 예상하든, 홈에서 하든 원정경기를 하든 항상 패배했다. 정규리그에서 최고 승률을 거둔 1998년에도 홈에서 열린 컨퍼런스 챔피언십 게임에서 '컴퓨터 키커' 게리 앤더슨이 38야드 필드골 도중 실축을 해 [[애틀랜타 팰컨스]]에게 불의의 필드골을 당하며 주저앉았고, 1999년 시즌엔 성적이 약간 하락해 10승 6패로 NFC 중부지구 2위를 차지하였으며 플레이오프 1회전(와일드카드전)에서 NFC 동부지구 2위팀인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물리쳤으나, 2회전 지구 결승에서는 NFC 서부지구 1위팀 [[세인트루이스 램스]]에 패했다. 2000년 시즌엔 작년 드래프트에서 뽑힌 무명대학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교 출신 QB 단테 컬페퍼를 주전 쿼터백으로 기용, 2년만에 다시 컨퍼런스 챔피언십까지 올라갔으나 원정 경기에서 [[뉴욕 자이언츠]]에게 41-0으로 참패했다. 2001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린 감독이 떠난 후 2004 시즌 들어 8승 8패로 플옵에 못 갔음에도 컬페퍼가 총 5,123 야드를 기록해 폭풍성장을 드러냈으나, 2005 오프시즌 때 샐러리캡 문제로 모스가 오클랜드 레이더스로 떠나고, 컬페퍼도 무릎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성적은 중위권을 맴돌았다. 2006년에 전 마이애미 돌핀스 단장 릭 스피엘먼이 선수 인사부사장 겸 단장으로 부임한 후 2007년 드래프트에서 오클라호마대 출신 RB [[아드리안 피터슨]]을 전체 7픽으로 영입하고, 2008년에는 [[캔자스시티 치프스]]로부터 자레드 앨런을 영입해 팀의 체질을 바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